16세기부터 이어온 설탕 제조법, '특허논란' 사연은

최진승 선임기자 최진승 선임기자 / 기사승인 : 2021-01-29 00: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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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콜롬비아에서 생산되는 정제되지 않은 원당(raw sugar)/ 사진= 게티이미지.

 

[아시아뉴스 = 최진승 선임기자] 최근 수백 년 전부터 이어져 내려온 비정제 원당(설탕) 제조법을 둘러 싼 황당한 사연이 화제다. 중남미 콜롬비아에서 벌어진 이 일은 미국 매체 뉴욕타임스 등에 실리며 세간에 알려졌다.

 

사연은 이렇다. 16세기부터 콜롬비아에서는 스페인 정복자들에 의해 사탕수수즙을 끓여서 만든 비정제 원당 제조가 보급되기 시작했다. 설탕이 없던 시절 만들어 졌지만 '파넬라(panela)'란 이름으로 수 백년간 콜롬비아인들의 삶 속에 깊숙히 자리 잡아왔다.

 

콜롬비아 현지에는 2만여 개 이상의 파넬라 전통 제조업체들이 있을뿐만 아니라 이중 '절 반' 이상이 100년 넘는 가업으로 사업을 꾸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거기에 생수에 파넬라를 섞은 만든 '아구아 파넬라'는 우리의 '식혜' 같이 농촌지역에서 즐겨 마시는 음료로도 유명하다.

 

사탕수수가 흔하디 흔한 콜롬비아에서 시골 도시를 중심으로 수 백년 이어온 전통 탓에 콜롬비아인들에게 파넬라와 아구아 파넬라는 오랜 세월 동안 자리잡아 온 전통 식품이자 식습관으로 누구나 만들고 자급자족 할 수 있는 기호식품으로 여겨져 왔다. 

 

논란의 발단은 비정제 원당의 효능에서 비롯됐다. 콜롬비아의 대형 설탕제조업체 투자자인 한 사업가가 사탕수수 성분과 비정제 원당이 인체의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추는데 가격 대비 효과가 있다고 보고 단독으로 특허 출원에 나선 게 화근이 됐다.

 

이미 그는 '폴리케인(Policane)'이란 명칭에 같은 비정제 원당 제조 비율을 기반으로 미국에서 제조법 특허를 취득했고, 이를 바탕으로 콜롬비아를 비롯해 중국과 호주, 유럽연합(EU) 등에까지 특허를 출원한 상태인 것으로 알려졌다.

 

▲ 콜롬비아 현지에 한 사탕수수밭 전경/ 사진= 게티이미지.

 

문제는 특허 받은 폴리케인의 제조법이 기존 파넬라 제조법과 동일하다는 점에 있다. 하지만 파넬라 제조법이 이어져온 지난 수백여년간 어떤 누구도 이 전통적 제조법을 독점하기 위해 특허나 상표 출원 등을 해본적이 없는 탓에 폴리케인의 제조법이 고유 특허로 인정 받은 것이다.

 

이 같은 황당한 상황을 두고 뉴욕타임스(NYT)는 "파넬라는 콜롬비아인들에게 오랫동안 자리잡아온 전통식품이기 때문에 이를 두고 특허를 얻는 건 밀크커피로 특허를 내는 것 만큼이나 터무니없는 일"이라고 지적하고 나섰다.

 

해당 매체는 또 특허를 출원한 사업가가 성장하는 파넬라 시장을 독점하고 가로채기 위해서 악의적으로 특허 출원을 진행했을 개연성이 높다고 비판했다.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인공 설탕이 아닌 사탕수수즙을 활용한 원당의 수요가 전 세계적으로 점점 늘어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특허 출원이 가능했던 맹점에 대한 지적의 목소리도 있다. NYT 포크 와그너 미 펜실베이니아대 교수의 말을 인용해 "특허 심사 관행의 맹점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가 될 것"이라며 "특허 심사관들이 미국서 발행된 현존 기술 자료를 찾아내는 데는 능하지만 다른 언어로 발행된 내용은 잘 살피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콜롬비아 파넬라생산자연합은 해당 특허 사업자를 대상으로 소송전을 준비중이다. 이들은 "파넬라는 우리의 전통 식문화이자 모두의 것"이라며 "콜롬비아 당국을 포함해 폴리케인 특허가 진행중이 여타 국가들도 특허를 허용해서는 안된다"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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