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아베 정권의 한국에 대한 반도체 수출규제와 화이트리스트 제외 이후 한일관계는 급속도로 나빠졌다. 독도문제나 정치적인 이유 등으로 양국 정부가 강하게 충돌한 경우는 꽤 있었지만, 민간 분야까지 포함해 전 사회적으로 반일감정이 고조됐던 경우가 1965년 한일협정 체결 이후 얼마나 있었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일본의 조치 이후 한국 기업들의 대응, 소재부품사업을 육성하기 위한 정부의 노력 등은 이미 언론을 통해 많이 보도되었기 때문에 소개를 생략한다. 내가 주목하는 것은 일본 국민들과 시민사회의 여론과 움직임이다.
보도에 의하면, 일본 야스쿠니 신사 앞에서 아베를 반대하는 일본 시민단체의 집회가 열리는가 하면, 일본 지식인들이 ‘한국이 적인가’라는 성명을 발표하고 서명을 받기 시작했는데 열흘 동안 6천여명이 참여했다고 한다. 또한 일본 트위터에서는 한 교사가 시작한 ‘좋아요 한국’ 해시태그 달기에 3만명 이상이 동참하는 등 점차 확산하고 있다고 한다.
칼 포퍼는 ‘열린사회와 그 적들’이라는 책에서 ‘열린사회’와 ‘닫힌사회’의 개념을 제시하고 있다. 열린사회는 전체주의와 대립되는 사회로 개인의 자유와 권리가 보장되는 민주적 사회를 말하는 반면, 닫힌사회는 전체주의와 역사주의에 기초하여 국가가 시민생활 전체를 규정하고 개인을 억압하는 사회라고 규정하고 있다.
포퍼식으로 말하자면, 아베 정권은 닫힌사회를 지향하는 것으로 보인다. 일본 시민단체 한 활동가는 한국 언론과 인터뷰에서 “아베 정부가 언론을 잘 관리하고 있다. 시청률이 높은 아침 뉴스에서 한국을 비판하는 보도를 지속적으로 내보내고, 정부비판 프로그램이 폐지되는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일본의 민주주의 수준이 그리 높지 않다는 것은 여러 전문가들이 지적하고 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재일교포 학자들이나 한국에 거주하고 있는 일본인 학자들에 의하면, 아베 정권은 일본의 보수 본류와는 다른 극우세력이라고 한다. 문제는 이들이 일본 자민당과 내각을 거의 장악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들은 전체주의, 군국주의 부활을 꾀한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아베 정권의 극우 행보가 어느 방향으로 튈지 아직은 미지수다. 다만, 지금까지 진행과정을 보면 의도대로 순탄하게 진행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여러 가지 변수 중 열린사회를 갈망하는 양심있는 일본 시민사회와 학계의 움직임이 큰 작용을 하리라 본다.
한국에서도 최근 ‘노 재팬’을 ‘노 아베’로 바꿔서 표현하자는 의견이 인터넷상에서 많이 퍼지고 있다. 한국과 일본 시민사회의 연대가 아베 정권에게 큰 부담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베 정권의 경제전쟁 초기 우리사회 내부에 전혀 상반된 해석과 전망이 엇갈렸지만, 이제 어느 정도 가닥을 잡은 것 같다. 다소 비합리적으로 일본 전체를 비판하거나, 반대로 비상식적으로 아베 정권을 두둔하는 극과 극의 목소리도 있었지만, 이 역시 어느 정도 정돈되고 있다.
이제 열린사회의 적 아베 정권이 쏜 오발탄을, 한국과 일본의 양심적인 국민들이 함께 치워내는 일이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