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레이위드 햄릿’ 네 명의 햄릿이 부르는 동시대의 자화상

권수빈 기자 / 기사승인 : 2025-02-08 14:0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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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타임스 = 권수빈 기자] 서울 마포구 소극장 산울림의 좁은 지하 무대. 다락방을 닮은 공간에 네 명의 청년이 흰 셔츠 차림으로 관객을 맞이한다. 이들이 연기하는 것은 고전 중의 고전, 셰익스피어의 ‘햄릿’이다. 연극 ‘플레이위드 햄릿’(연출 박선희)은 고전을 해체하고 재구성해 오늘날 청년의 분열된 자아와 시대의 공허함을 투영하는 실험적 작품이다.

 

사진=’플레이위드 햄릿’

‘플레이위드 햄릿’은 하나의 인물을 네 명의 배우가 나눠 연기한다. 그들은 때로 햄릿의 다른 면이 되고, 때로는 오필리어·거트루드·클로디어스 등 주변 인물로 분화한다. 한 인물이 파편으로 나뉘고 다시 합쳐지는 구조 속에서 관객은 ‘나는 누구인가’라는 고전적 물음이 동시대 청춘의 혼란으로 번져가는 과정을 목격하게 된다.

박선희 연출은 작품을 “성장하지 못한 젊은 세대의 대환장 파티”로 표현했다. 햄릿들은 노래하고, 키보드와 멜로디언을 연주하며, 무대 위에서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려 하지만 끝내 일체감을 얻지 못한다. 그들의 움직임은 불안하고 삐걱거린다.

이 작품의 가장 흥미로운 설정은 관객이 햄릿의 친구 ‘호레이쇼’로 참여한다는 점이다. 배우들은 객석을 향해 끊임없이 말을 건다. “호레이쇼, 넌 내 얘기를 듣고 있지?”라는 직접적인 관객을 단순한 감상자에서 ‘증인’으로 끌어올린다. 햄릿이 무너지는 과정, 혹은 그 안에서 자기 자신을 되찾으려는 몸부림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보는 존재가 바로 관객이다.

햄릿과 레어티스의 결투 장면은 강렬한 상징성을 지닌다. 두 배우는 칼이 아닌 젬베를 들고 서로를 향해 절규하며 리듬을 쌓는다. 폭력 대신 진동으로, 피 대신 울림으로 감정을 터뜨리는 장면은 이 연극의 핵심 주제인 ‘폭력의 시대를 넘어선 감정의 소통’을 시각화한다.

‘플레이위드 햄릿’은 처음 선보인 2023년 초연 당시에도 강한 인상을 남겼다. 당시 평단은 “고전을 가장 낯설게 재해석한 청년 연극”이라 평했고, 관객들 역시 “햄릿이 아니라 우리 자신을 본 기분”이라는 반응을 남겼다. 이번 재공연은 무대 연출과 음악을 더욱 세밀히 다듬은 버전으로, 젊은 관객층의 호응을 얻고 있다.

‘플레이위드 햄릿’은 오는 3월 16일까지 소극장 산울림에서 이어진다. 네 명의 햄릿이 분열된 자아로 무대 위를 헤매는 동안 관객은 고전의 새로운 시도를 경험할 수 있다.

뉴스타임스 / 권수빈 기자 ppbn0101@newstimes.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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