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타임스 = 우도헌 기자]
한국 근대 단편문학의 한 축을 세운 작가 김유정(1908~1937)의 이름은 언제나 ‘봄’과 ‘농촌’, ‘사람 냄새’로 기억된다. 올해로 그의 탄생 117주년을 맞아 고향인 강원도 춘천에서는 그의 문학적 숨결을 되살리는 자리가 열렸다.
12일 춘천시 아트프라자 갤러리에서 열린 김유정 탄생 117주년 기념식은 ‘작품 속 인물과 주저리 한판 땡볕’이라는 주제로 꾸려졌다. 창작 판소리 공연, 김유정 문학의 세계를 다룬 특강, 단편소설 ‘땡볕’을 각색한 낭독극으로 구성되며, 문학과 공연이 어우러진 축제의 장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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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김유정기념사업회 |
행사를 주최한 김유정기념사업회는 2008년 탄생 100주년을 기점으로 111주년(2019년), 115주년(2023년) 등을 거치며 매년 작가의 생일을 기리는 기념 행사를 이어오고 있다.
김금분 김유정기념사업회 이사장은 이날 “영원한 청년 작가 김유정의 문학이 가진 따뜻한 인간애를 오늘의 독자에게 다시 전하고 싶다”고 전했다.
김유정의 문학 세계는 ‘웃음 뒤의 눈물’로 요약된다. 그는 일제강점기의 척박한 농촌 현실을 배경으로 가난하지만 인간적인 인물들을 특유의 해학과 따뜻한 시선으로 그려냈다. 대표작 ‘동백꽃’은 짝사랑에 서툰 농촌 청년의 이야기를 해학적으로 담아낸 작품으로, 김유정 문학의 정수를 보여준다. ‘봄봄’은 결혼하기 위해 봄만 되면 일을 더 하게 되는 머슴의 순박한 심리를 통해 인간의 욕망과 순정을 동시에 포착했다.
그 밖에도 ‘소낙비’, ‘산골 나그네’, ‘금 따는 콩밭’, ‘땡볕’ 등은 농민의 가난, 일제하의 모순된 사회 구조, 그 속에서도 피어나는 인간적 유머를 보여주는 작품들이다.
비평가들은 김유정을 두고 “비극을 웃음으로 승화한 작가”, “한국 농민 문학의 원류”라 평한다. 그가 그린 인물들은 대부분 문맹에 가난하고 불운하지만 글 속에서 언제나 살아 움직이며, 구수한 강원도 사투리와 생생한 농촌 묘사로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그의 고향 춘천시 신동면 증리, 일명 실레마을에는 지금도 ‘김유정 문학촌’이 자리하고 있다. 이곳에 김유정의 생가, 문학관, 창작 체험관이 복원돼 있으며, 그의 삶과 작품세계를 탐방할 수 있는 ‘김유정역’도 존재한다. 이 역은 국내 유일하게 작가의 이름을 딴 기차역으로, 2004년 개명 당시부터 문학인과 시민의 자긍심을 상징하는 공간으로 자리잡았다. 문학촌에서는 해마다 ‘김유정문학제’와 ‘김유정 신인문학상’이 열리며, 전국 각지의 문학도들이 참여해 작가의 정신을 기린다.
김유정은 1930년대 초, 연희전문(현 연세대)을 중퇴하고 본격적인 문학 활동을 시작했으나 불과 29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단 3년여의 짧은 창작 기간 동안 발표한 작품은 30편 남짓이지만 그가 남긴 언어의 향기와 인간적 시선은 여전히 한국 문학사 속에서 생생하게 살아 있다. 문장은 소박하고, 인물들은 구수한 사투리로 말하지만 그 안에는 시대의 아픔과 인간의 존엄이 있다. 김유정은 가난 속에서도 인간의 순박함을, 절망 속에서도 웃음을 놓지 않았다.
김유정의 문학이 지닌 향토성, 해학, 인간애는 여전히 현대 사회에도 유효하다. 도시의 고립과 경쟁 속에서 인간미를 잃어가는 시대에 김유정의 세계는 “그래도 웃으며 살아가야 한다”는 진리를 일깨운다. 그는 짧은 생애로 ‘근대 문학의 봄’을 열었고, 그 봄은 지금도 실레마을의 산자락과 독자들의 마음속에 피어 있다.
뉴스타임스 / 우도헌 기자 trzzz@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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